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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27(목)
광주학생독립운동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정신이 살아숨쉰다, 광주제일고

자주적이고 당당한 청소년들의 함성 - 광주학생독립운동

 

2005년 11월 3일이 다가온다. 11월 3일, 달력 속에서도 점점 사라져 가는 그 날은 전 세계 역사적으로 유래없는 5만 4천여명의 어린 학생들이 제국주의에 대항하여 독립을 소리높여 외친 날이다.

1929년 11월 3일에 있었던 광주학생독립운동은 현재, ‘학생의 날’로 기념되어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지만 전국의 학생들에게 그리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그 당시 온 몸을 날려 조선의 독립을 위해 싸웠던 광주제일고의 선배들의 얼을 찾아가봤다.

▲광주제일고 교내에 있는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탑'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전제순기자

전 세계의 유래없는
학생들의 제국주의 반대 시위,
광주학생독립운동

1929년 11월 3일과 12일 광주에서 연이어 일어난 대규모 항일 학생시위가 일어났다. 이 시위는 10년 전에 있었던 3.1운동에 버금가는 거센 항일운동이다. 그리고 이 운동의 중심에는 바로 중고생인 청소년이 있었다.

이미 1928년 10월 광주지역의 고등학생들은 일제의 신사참배의 강요를 거부하는 등의 반일의 감정이 드높았다. 결정적인 항일 학생시위의 발단은 1929년 10월 30일 광주중학교의 일본인 학생들이 통학열차 안에서 우리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을 희롱한 사건으로부터 시작해 11월 3일 오전 광주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은 광주중학교 일본인 학생들과 시내에서 충돌한 데 이어 오후에는 가두로 진출, 시위투쟁에 들어갔다.


“일제 식민지 교육 반대!”
“조선 독립 만세!”

당시 학생의 날로 기록되고 있는 11월 3일은 당시 일본인들에게는 일본천황의 탄생을 기념하는 명치절이었고 조선에게는 우리의 명절 개천절이기도 했다. 바로 그런 날에 우리나라 학생들은 일본 신사에 고개를 조아리고 일요일 강제등교하여 신사참배를 해야 했고 학생들은 울분이 쌓인 학생들은 분노하기 시작했다.

이날의 시위를 시작으로 다음해 1930년 2월 초순까지 전국적으로 동맹휴학과 시위가 끊임없이 이어졌고 참가한 학교는 총149개교(초등 54, 중등91, 전문 4), 참가학생수는 5만 4천여 명에 이른 것으로 집계됐다. 또 이번 학생시위로 퇴학처분을 받은 학생이 582명, 무기청학 2천330명, 피검자 1천642명에 이르러 3·1운동이후 최대의 항일운동을 기록했다.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에 있는 항일운동의 주역드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전제순기자


“우리는 피 끊는 학생이다. 오직 바른 길 만이 우리의 생명이다.”

▲광주제일고 박재성선생님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전제순기자
광주학생독립운동 당시 200여명의 학생들이 연루되 처벌되었던 광주제일고는 그 항일운동의 역사전통을 기리고, 뜻을 이어받기 위해 기념관과 광주학생독립운동 탑도 세워 매년 학생의 날 기념식을 통해 그 뜻을 이어나가고 있다.

1919년에 지어진 학교 교훈 또한 “다하라. 충효, 이어라 전통, 길러라 실력”으로 항일운동의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있는 광주제일고의 박재성 교사(광주제일고 졸업생)는 “광주학생독립운동은 어린 학생들이 벌인 전세계 유래없는 반일 시위였다. 하지만 좌익세력이 가담했다는 이유로 제대로 역사 재정립이 되지 않아 후대로 그 정신이 이어지지 않고 있다”며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주역인 장재성을 포함하여 국가유공자로 등록되지 않은 사람들도 수두룩 하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학생들의 역사의식이 부족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꼬집으면서 “2005년에 살고 있는 현재 학생들도 '학생의 날'을 통해 자기 삶으로서의 역사의식을 어떻게 가질지, 진정한 청년 학생으로서 이시대의 나의 삶을 어떻게 갖춰나갈지에 대해 진지한 성찰이 이번 계기를 통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어른들의 경건한 기념식을 넘어 학생들의 자발적인 학생의 날의 의미를 되찾아 나가야 한다"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학생의 날’을 ‘학생독립운동기념일’로!”

광주학생독립운동 기념관의 관장이자 광주제일고의 졸업생, 교장이였던 이강년 관장은 “‘학생의 날’은 군부독재시절에 학생들의 자주적인 의식을 꺾기 위해 ‘학생의 날’을 폐지시켰다”며 “‘학생의 날’은 학생들의 인권을 존중하고 학생들을 사랑하는 날이라면 ‘학생독립운동기념일’은 선배들의 자주독립의 뜻이 담긴 날이기 때문에 ‘학생독립운동기념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광주학생독립운동 기념관 관장인 이강년선생님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전제순기자

학생의 날은 3·1운동과 함께 우리민족의 대표적인 광주학생독립운동을 기리기 위해 1953년 10월 20일 제2대 국회에서 고 김종순의원 등의 제안으로 제정돼 해마다 11월3일 기념식과 각종 행사를 가져왔다.

그러나 구테타를 일으켜 대통령이 된 박정희는 1973년 3월 많은 기념일을 간소화한다는 방침아래 국무회의에서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을 개정, 53개 기념일을 26개로 줄였다. 이에 학생의 날은 사라졌다. 그러나 이는 당시 학생시위사태를 의식해 취해진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학생의날 폐지 이듬해부터 광주학생독립운동동지회와 광주제일고 동창회 등이 중심이 돼 매년 기념식을 거행하고, 입법청원 하는 등 학생의날 부활 움직임을 계속했다. 그러던 중 지난 82년 8월 일본의 역사교과서왜곡사건이 크게 문제되자 항일독립운동기념일인 11월3일이 다시 ‘학생의날’로 정해져야 한다는 각계의 소리가 고조되었고 현재 11월 3일을 ‘학생의 날’로 기념되고 있다.

최근 한나라당 맹형규 의원은 ‘학생의 날(11월 3일)’을 ‘학생독립운동기념일’로 변경할 것을 정부에 촉구하는 결의안을 여야 의원 25명의 서명을 받아 국회에 제출한 상태이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은 '댕기머리사건'이 아니야!

2005년 76돌을 맞이하는 지금의 청소년에게 ‘학생의 날’은 단순한 ‘댕기머리’사건으로 생긴 우발적인 반일 운동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학생의 날은 바로 학생들 자신의 날이자 이 사회의 주인임을 당당히 선포하는 날이라는 인식을 심어야 한다.

사회에, 학교에 외치는 학생들의 주장이 하나의 거대한 힘으로 모아져 이 사회의 정의와 자주를 외치는 날로 만들어야 한다. ‘학생의 날’, 자주적이고 당당한 청소년들의 함성이 76년 전, 전국을 거세게 일으켜 세웠던 그날의 힘으로 다시 한번 세상의 희망이 되길 꿈꿔본다. 


▲맨위로 2005년 10월 25일 19:46
©2005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즐겨찾기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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